이세정  / 디자인총괄추진단장

  상업간판이란 무엇일까? 경제적 이익을 위해 대중이 볼 수 있도록 옥외에 설치한 광고물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하고자 한다.  전문적인 설명이 될지는 몰라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업간판이 그 사회의 정의를 평가하는 하나의     중요한 척도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간판은 광고주와 제작자 뿐 만 아니라 그      지역의  품격을 보여주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된다는 말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건물보다는 간판이 먼저 눈에 띤다.  간판들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며      간판크기가   크고 개수가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상가건물에 제각각의    모양과 색깔 그리고 낡은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은 것을 보면 그 안의    시설과 사람들이  어떤지 상상하게 된다. 어떤 업소는 창문 전체를 광고물로 막은 곳도 있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햇빛도 없이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까, 그 사람들이 과연 정의로운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부가 깨끗하지 않고 화장실은 굳게 잠겨 있으며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들어가기가 썩내키지 않을 뿐더러 간판이 크고 노후되어 지나갈 때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도 생긴다. 무엇보다 대형 간판과 불법 광고물이 문제이다. 어떤 식당은 길이가   10m 폭이 1m 정도의 큰 간판을 달아 놓았는데 보기가 좋지 않다. 실제로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간판보다는 건물 색과 조화를 이루며 시선 높이에 알맞게     걸린 간판에 더 주목하며 간판 선진국의 경우 이런 원칙에 잘 부합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대형 간판은 야간에 에너지 낭비도 심하다. 또한  많은 업소들이 자기      업소를 홍보하기 위해 영업이 끝난 시간 이후에도 계속 간판의 조명을 밝혀 놓는  것도 문제이다. 특히 이들의 대부분이 은행, 의원, 약국 등 소위 지식인들이 운영하는 시설이라는 점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전기요금을 내가 지불하는데 무슨 상관이냐”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난 9월 15일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태를 생각해 보면 이정도의 절전운동에는 쾌히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전문기관에 의하면 올 겨울에도 이같은  전기 소비 추세라면  지난 번과 같은 블랙아웃이 다시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간판은 상호와 업종을 알리는 매체이므로 디자인과    가독성 모두가 고려되어야 한다.  글자 수는 최소한 적고 명료하며 디자인은    단순할수록 좋다. 그래서 간판위의 표현은 명사이면 족하다. 간판 선진국에서는 수식어나 문장이 표기된 간판을 보기 어렵다. 예를 들면 “나이야 가라 ! 피부미용실”, “완전 공짜 휴대폰”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전좌석 완전 업그레이드 전국 최대 최고 짱 PC방” 등의 간판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이것은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즉흥적   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소위 ”감성적 소구 (appeal)의“한  광고방법이며  잡지 같은 매체 에는 가능할지 모르나 누구나 볼 수 있는 옥외광고물에는 공해가 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보도에 설치한 불법 광고물이다.  보도, 심지어 차도에까지 무분별하게 설치한 입간판, 에어라이트 등은 가뜩이나 좁은 보도환경에서 보행자, 특히 시작장애인과  노 약자들에게는   위협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간판은  자신을 알리는 기능과 주위경관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성을 함께 갖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광고물은 비록 사유물일지라도 거리에   내걸리는 순간부터 공공물이 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진정으로 정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또한 진정으로 내가 지식인이라면 노골적이고 이기적인 상업홍보의 차원을 넘어 도시환경의 조화, 그리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내 재산과 재능을 기부하고 봉사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간판을 법규정에 맞추어 건물과 주위경관에 맞게 예쁘게 설치하고 이를 잘  관리해 나가는 것도 사회정의에 기여하는 길이다.